항목 ID | GC089007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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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漢錫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대열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19년 3월 18일 - 이한석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에서 3·1운동 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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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18일 - 이한석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 3·1운동 참여 |
출생지 | 화도면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
거주|이주지 | 화도면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
활동지 | 화도면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정의]
경기도 남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이한석(李漢錫)[?~?]은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에 해당하는 양주군 화도면에서 출신이며, 화도면에서 전개된 3·1운동에 참여하였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16일 화도면에서 김필규(金弼圭), 이택하(李澤夏), 이인하(李麟夏)는 서울에서 일어난 3·1운동 소식을 들은 뒤 유인명(柳寅明), 윤태익(尹泰益), 이달용(李達鎔), 이덕재(李德在), 이재하(李載夏), 이택주(李宅周), 홍순철(洪淳哲) 등과 화도면 답내리 월산교회에 모여 봉기할 시기와 방법을 결정하고 연락하였다. 하지만 일본 경찰에 거사가 발각되어 이택하, 이재하, 이승보(李承輔) 등이 검거되었다.
이한석은 1919년 3월 18일 화도면 월산리[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화도면 답내리[현 남양주시 화도읍 답내리] 주민 200여 명과 함께 화도면 마석우리[현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우리] 헌병주재소로 가서, 검거된 인사 3명의 석방을 요구하면서 독립 만세 운동을 벌였다. 이때 일본 헌병이 시위의 기세를 꺾고자 무자비한 진압을 감행하여 다수의 사상자들이 발생하였다. 손복산(孫福山), 신영희(申榮熙), 유상규(兪相奎), 이교직(李敎稙), 이달용 등이 사망하였고, 강덕여(姜德汝), 원대현(元大鉉), 윤균(尹均), 윤정석(尹丁石), 이재혁(李載赫) 등이 중상을 입었다. 이때 일본 헌병의 발포로 이한석도 부상을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