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0676
한자 姜善遠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태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4년연표보기 - 강선원 출생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 - 강선원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에서 3·1운동 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 - 강선원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 3·1운동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25일 - 강선원 징역 6개월 선고
추모 시기/일시 2009년연표보기 - 강선원 대통령 표창 추서
출생지 월산리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월산리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활동지 화도면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정의]

경기도 남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강선원(姜善遠)[1874~?]은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에 해당하는 양주군 화도면에서 태어났고, 농사를 지었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13일 경기도 양주군 미금면 평내리[현 경기도 남양주시 평내동]의 만세 시위가 확산되어 양주군 와부면 송촌리[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등 남양주 지역 전반으로 퍼져 나갔다.

1919년 남양주 일대에서 3·1운동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화도면에서도 마을 주민들이 만세 운동을 추진하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었다. 특히 월산교회 교인 이인하(李麟夏)·이택주(李宅周)·김우동(金愚東)·김필규(金弼圭)와 화도면 월산리[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마을 주민 이달용(李達鎔)·이승보(李承輔)·이재하(李載夏)·이덕재(李德在)·이택하(李澤夏)·유인명(柳寅明)·홍순철(洪淳哲)·윤태익(尹泰益) 등이 거사를 모의하였다. 하지만 1919년 3월 16일 일본 경찰에 의하여 거사가 사전에 발각되었고 이승보·이재하·이택하가 체포되고 말았다.

그러자 이승보·이재하·이택하의 석방을 촉구하기 위하여 마을 주민들은 1919년 3월 18일 밤 10시경 수십 명의 군중이 화도면 마석우리[현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우리]에서 “조선 독립 만세”를 외쳤고, 점차 군중이 늘어나서 200명이 되었다. 강선원도 1,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화도면 마석우리에 있는 헌병주재소로 몰려가서 구금자 석방을 요구하였다. 일본 헌병대는 시위의 규모가 커지고 분위기가 과열되자 시위 군중을 향하여 무차별 발포를 시작하였다. 남양주 일대에서의 3·1운동 중 최초의 유혈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때 일본 헌병대의 총격에 의하여 이달용손복산(孫福山)·신영희(申榮熙)·유상규(兪相奎)·이교직(李敎稙) 등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을 당하였는데, 강선원김필규·권은(權慇)·남궁우룡(南宮又龍)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조선 독립 만세를 절규함으로써 정치에 관한 불온한 동작을 하여 안녕질서를 방해한 것”이라는 판결에 따라 「보안법」 제7조에 의하여 징역 6개월을 선고받은 뒤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강선원은 2009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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