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9005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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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一運動紀念碑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경춘로 2226[월산리 99]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명학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19년 3월 18일 - 3·1운동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에서 전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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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시기/일시 | 1985년 11월 15일 - 3·1운동 기념비 건립 |
이전 시기/일시 | 1998년 11월 - 3·1운동 기념비 이전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8년 11월 - 독립기념비에서 3·1운동 기념비로 개칭 |
현 소재지 | 3·1운동 기념비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경춘로 2226[월산리 99] |
원소재지 | 3·1운동 기념비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소래비로 30-39[마석우리 산9-1] |
성격 | 기념비 |
관련 인물 | 강덕여|강선원|구영식|권은|김원석|김필규|남궁우룡|손복산|신영희|유상규|윤균|윤정석|윤준|원대현|이교직|이달용|이승면|이윤원|이재혁 |
재질 | 화강암 |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에 있는 3·1운동을 기념하기 위한 비.
[개설]
3·1운동 기념비(三一運動 紀念碑)는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에 있다.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지금의 남양주시 화도읍]에서는 1919년 3월 18일 밤 10시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다. 1,000여 명의 주민들은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 마석우리[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우리]에 있는 헌병주재소 앞에 모여 구금된 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면서 조선 독립 만세를 외쳤다. 만세 시위 과정에서 일제 헌병의 무자비한 발포로 5명이 죽고 6명이 중상을 입는 유혈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때 9명이 체포되어 감옥살이를 하였다.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일대에서 전개된 3·1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3·1운동 기념비가 세워졌다.
[건립 경위]
3·1운동 기념비는 1985년 11월 15일 경기도 남양주시는 만세 시위에 앞장섰던 주민들의 희생을 되새기고 위대한 애국정신을 널리 전하기 위하여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우리 산9-1번지에 건립하였다. 그러나 건립 장소가 외지고 협소하여 1998년 11월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화광중학교로 이전하고 명칭도 ‘독립기념비’에서 ‘3·1운동 기념비’로 변경하였다.
[위치]
3·1운동 기념비는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99번지 화광중학교 교내에 있다.
[형태]
3·1운동 기념비는 백색 화강암으로 만든 1단의 직사각형 기단석 위에 5조각으로 구성된 검은색의 비신이 올려져 있고 정면에 ‘3·1운동기념비’라고 새겨져 있다.
[금석문]
3·1운동 기념비에는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일대에서 일어난 3·1운동의 전개 과정과 순국한 사람들과 감옥살이를 한 강덕여(姜德汝), 강선원(姜善遠), 구영식(具永植), 권은(權慇), 김원석(金元石), 김필규(金弼奎), 남궁우룡(南宮又龍), 손복산(孫福山), 신영희(申榮熙), 유상규(兪相奎), 윤균(尹均), 윤정석(尹丁石), 윤준(尹俊), 원대현(元大鉉), 이교직(李敎稙), 이달용(李達鎔), 이승면(李承冕), 이윤원(李允遠), 이재혁(李載赫)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현황]
3·1운동 기념비는 화광중학교 내에 있어 일반인들이 쉽게 드나들기 힘들다.
[의의와 평가]
3·1운동 기념비를 통하여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일대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의 전개 과정과 주민들의 고귀한 정신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