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9013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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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漢紀 |
영어공식명칭 | Nam Hangi |
이칭/별칭 | 국보(國寶),기옹(寄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강원 |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리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남한기(南漢紀)[1675~1748]의 본관은 의령(宜寧)이며, 자는 국보(國寶), 호(號)는 기옹(寄翁)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남득붕(南得朋)이고, 할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남용익(南龍翼)이다. 아버지는 목사 남정중(南正重)이고, 어머니는 이조참판 이인환(李寅煥)의 딸 경주 이씨(慶州李氏)이다. 부인은 심한장(沈漢章)의 딸 청송 심씨(靑松 沈氏)이며, 아들은 이조정랑 남유상(南有常)·형조판서 남유용(南有容)·남유정(南有定)이다. 순조 때 영의정을 지낸 남공철(南公轍)이 손자이다.
[활동 사항]
남한기는 1675년(숙종 1) 한성부[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1710년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712년 현릉참봉, 1719년 광흥창주부를 거쳐 형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1722년(경종 2) 정치적인 격변 속에서 파직당하여 관직에서 물러났으며, 1728년(영조 4) 맏아들인 남유상이 사망하자 선영이 있는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리 일대로 낙향하였다.
남한기는 1731년(영조 7) 군자감판관으로 조정에 복귀하였으며, 이후 형조정랑·호조정랑·청풍부사·청송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744년(영조 20)에는 둘째 아들인 남유용이 홍문록에 올라 통정대부가 되었으며, 이후 동지돈녕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 등을 역임한 뒤 1748년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남한기의 저술로는 문집인 『기옹집(寄翁集)』이 전한다. 현전하는 『기옹집(寄翁集)』의 판본은 남한기의 둘째 아들인 남유용이 1764년에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묘소]
남한기의 묘소는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리 의령 남씨 묘역에 있다.
[상훈과 추모]
남한기는 1742년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1768년에는 좌찬성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