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9007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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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玄一成 |
영어공식명칭 | Hyeon Ilseong |
이칭/별칭 | 현상규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조형열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29일~1919년 3월 30일 - 현일성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3·1운동 참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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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50년 10월 21일 - 현일성 사망 |
거주|이주지 | 봉선사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
활동지 | 부평리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3·1운동 |
[정의]
경기도 남양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가계]
현일성(玄一成)[?~1950]은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에 해당하는 경기도 양주군 진접면 부평리에 있었던 봉선사(奉先寺)의 승려였다. 다른 이름은 현상규이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1일 경성부 인사동[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 태화관에서 민족 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이후 독립 만세 운동의 열기는 전국으로 확산하였다. 3·1운동의 주도 세력 가운데 하나였던 불교계도 각지에서 3·1운동의 확산에 기여하였으며, 부평리[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에 있는 봉선사의 독립 만세 시위도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일찍부터 독립 선언의 소식을 알고 있던 봉선사 승려 현일성과 강완수(姜完珠)·이순재(李淳載)·김성암(金星岩)[후일 김성숙으로 개명] 등은 만세 운동에 동참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현일성 등은 독립운동의 열기를 전파하기 위하여 만세 시위의 필요성과 구체적인 지침을 담은 선언문을 제작하여 배포할 것을 결정하였다. 선언문의 작성은 김성암·이순재와 당시 경성에서 약종상을 하고 있던 김석로(金錫魯)가 맡았다. 선언문의 명의는 ‘조선 독립단 임시 사무소’였으며, 내용은 파리강화회의에서 12개국을 독립국으로 만들기로 결정한 듯하므로, 이러한 기회에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여 독립을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봉선사 경내의 서기실에서 제작한 선언문 200매는 1919년 3월 29일 밤부터 다음 날 30일 새벽 5시 사이에 부평리와 인근 민가에 전달되었고, 현일성은 강완수 등과 함께 배포의 책임을 맡았다. 봉선사 승려들의 선언문 배포는 이후 3월 31일 부평리 광릉천 일대에 200여 명의 군중이 모여 일으킨 독립 만세 시위에 영향을 미쳤다. 부평리 만세 사건으로 김성암·이순재·강완수 등은 8개월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현일성은 체포를 면하였다.
광복 이후 1948년 이승만 정부가 들어서고 현일성은 지역 내 사회 개혁 운동에 동참하였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이 서울을 수복한 뒤 현일성은 인민군 치하에서 인민군에게 협력하였다는 이유로 인근 진접지서에 끌려갔다가 1950년 10월 21일 진접면사무소 뒷산에서 살해되었다고 전한다.
[상훈과 추모]
1997년 봉선사 경내 부도전에는 승려 지월[이순재]의 행적을 중심으로 현일성을 비롯한 봉선사 승려들의 독립운동 참여를 기록한 ‘지월당순재화상건국유공행적비(池月堂淳載和尙建國有功行蹟碑)’가 세워졌다. 2018년에는 봉선사 일주문 옆에 부평리 3·1운동 유적지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설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