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900767 |
---|---|
한자 | 李興錄 |
영어공식명칭 | Lee Heungrok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대열 |
출생 시기/일시 | 1853년 10월 18일 - 이흥록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31일 - 이흥록 경기도 양주군 진접면 부평리 3·1운동 관여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5월 2일 - 이흥록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 선고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6월 19일 - 이흥록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월 집행유예 1년 선고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11월 18일 - 이흥록 집행유예 취소 |
몰년 시기/일시 | 1921년 6월 12일 - 이흥록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2년 - 이흥록 대통령표창 추서 |
출생지 | 부평리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
활동지 | 부평리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3·1운동 |
[정의]
경기도 남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이흥록(李興錄)[1853~1921]은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에 해당하는 경기도 양주군 진접면 부평리에서 태어났으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민족 대표들의 3·1 독립 선언 소식을 접한 봉선사 승려들은 시위 계획을 구체화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1919년 3월 29일 봉선사의 승려 이순재(李淳載)·김성암(金星岩)·강완주(姜完珠), 서울에서 약종상을 하고 있던 김석로(金錫魯) 등은 문건을 작성하여 부평리와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배포하였다. 배포된 문건의 명의는 ‘조선 독립단 임시 사무소’였으며, 내용은 파리강화회의에서 12개국을 독립국으로 만들기로 결정한 듯하므로, 이러한 기회에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여 독립을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흥록은 이순재 등이 배포한 문건에 영향을 받아 부평리 광릉천 일대의 시위를 처음으로 결의하고 구체화한 이재일(李載日) 및 최영갑(崔永甲)·최대봉(崔大奉)·양삼돌(梁三乭)·유희상(柳熙庠)·박석몽(朴石夢)·최대복(崔大福) 등과 함께 1919년 3월 31일 독립 만세 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시위는 일본 헌병에 의하여 해산되었다.
이에 따라 이흥록은 체포되어 1919년 5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흥록은 공소하여 1919년 6월 1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월 형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지만, 이후 집행유예가 취소되면서 1919년 11월 18일 징역 3월 형에 처해졌다.
이흥록은 1921년 6월 12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이흥록에게 2002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