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0695
한자 金正夏
영어공식명칭 Kim Jeongha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명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5일 - 김정하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 3·1운동 참여
활동지 송촌리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지도보기
활동지 덕소리 -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3·1운동

[정의]

경기도 남양주 지역에서 활동하였던 독립운동가.

[개설]

김정하(金正夏)[?~?]는 3·1운동이 한창 전개되던 1919년 3월 15일 태극기를 앞세우고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면사무소가 있는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 덕소리[현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로 행진하는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활동 사항]

3·1운동의 영향으로 1919년 3월 14일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에서도 만세 시위의 시기와 방법을 논의하였다. 경성에서 발화한 3·1운동의 취지에 깊은 감명을 받은 김정하는 다수의 힘으로 정치 변혁을 도모하려는 목적 아래 김춘경(金春經), 김현모(金顯模), 이정성(李正成) 등과 함께 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에 해당하는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 송촌리에 있는 경진학교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태극기를 인쇄·제작하였으며, 다음 날인 1919년 3월 15일 만세 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정하였다.

1919년 3월 15일 이른 아침 와부면 주민 500여 명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덕소리의 헌병 주재소 앞에 집결하여 행진 도중에 체포된 3명의 석방을 요구하면서 대대적인 만세 시위에 나섰다. 김정하는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소리 높여 조선 독립 만세를 외쳤다. 무자비한 폭력을 사용하여 강제적으로 시위대를 해산하는 동시에 관련자를 체포한 일제 헌병은 1919년 3월 17일 송촌리로 출동하여 나머지 가담자를 연행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김정하는 마을 주민들과 같이 미리 다른 곳으로 몸을 숨겨 체포되지 않았다. 그 결과 김정하는 만세 시위의 주동자로 기소되어 실형을 선고받은 다른 인사들과 달리 옥고를 피할 수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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