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9007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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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近永 |
영어공식명칭 | Yu Geunyeong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강산 |
출생 시기/일시 | 1897년 1월 3일 - 유근영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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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19년 - 유근영 경성고등보통학교 4년 재학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5일 - 유근영 남대문역 3·1운동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8월 30일 - 유근영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 선고 |
몰년 시기/일시 | 1954년 4월 30일 - 유근영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2년 - 유근영 대통령표창 추서 |
출생지 | 덕소리 -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 |
학교|수학지 | 경성고등보통학교 - 서울특별시 종로구 화동 |
활동지 | 남대문 - 서울특별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3·1운동 |
[정의]
경기도 남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유근영(柳近永)[1897~1954]은 1897년 1월 3일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에 해당하는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 덕소리 425번지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유근영은 1919년 3·1운동 당시 경성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었으며, 경성부 삼청동[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 36번지에 거주하고 있었다. 유근영은 중동학교 학생 김종현(金宗鉉)·경성고등보통학교 학생 최강윤(崔康潤)·국어보급학관 학생 박태병(朴台秉) 등이 주도한 1919년 3월 5일 학생운동 시위에 참여하였다.
김종현·최강윤·채순병은 1919년 3월 4일 밤 경성부 안국동[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안국동] 39번지 박태병의 집에서 “내일 5일 오전 8시 30분 남대문 역 앞에서 제2회의 독립운동이 개최되므로 태극기를 가지고 오라.”라는 통지서 약 400매를 만들어 송현동(松峴洞)·소격동(昭格洞)·중학동(中學洞)을 중심으로 각 집에 배부하였다. 이튿날인 1919년 3월 5일 오전 8시를 전후로 시위대는 남대문에 모여 ‘조선 독립’이라고 쓴 깃발을 휘두르고 붉은 천을 흔들며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며 경성부 내를 행진하였다. 유근영은 최평읍·유만종·안상철·이양직·길원봉 등과 함께 남대문역 앞에서 독립 만세를 불렀다.
남대문역 앞 시위로 체포된 유근영은 1919년 8월 3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출판법」 위반과 「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징역 6월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유근영은 1954년 4월 30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유근영에게 1992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