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9007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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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沈鍾協 |
영어공식명칭 | Sim Jonghyeop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조형열 |
출생 시기/일시 | 1873년 4월 15일 - 심종협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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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30일 - 심종협 경기도 양주군 진건면 양지리 3·1운동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5월 2일 - 심종협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 선고 |
몰년 시기/일시 | 1942년 6월 20일 - 심종협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5년 - 심종협 대통령표창 추서 |
출생지 | 양지리 -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 양지리 |
활동지 | 양지리 -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 양지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3·1운동 |
[정의]
경기도 남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심종협(沈鍾協)[1873~1942]은 1873년 4월 15일 현재의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 양지리에 해당하는 경기도 양주군 진건면 양지리에서 태어났으며, 양지리 3·1운동에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일제의 탄압을 받았다.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일대를 포함하는 경기도 양주군도 당시 3·1운동이 활기차게 일어났던 지역 중 한 곳으로, 1919년 3월 13일 이래로 4월 초순까지 20여 회에 달하는 독립 만세 운동이 전개되었음을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중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은 1919년 3월 13일과 14일 경기도 양주군 미금면(渼金面) 평내리(坪內里) 만세 시위와 14일의 와부면(瓦阜面) 덕소리·진접면(榛接面) 장현리(長峴里)의 만세 시위, 15일의 와부면 송촌리(松村里)·덕소리·조안리(鳥安里) 일대에서 벌어진 만세 시위, 18일의 화도면(和道面) 마석우리(磨石隅里) 만세 시위, 29일의 별내면(別內面) 퇴계원리(退溪院里)·진건면(眞乾面) 오남리(梧南里)[현 오남읍 오남리]의 만세 시위, 30일의 진건면 양지리(陽地里) 만세 시위, 31일의 진접면 광릉천 만세 시위, 그리고 4월 8일의 와부면 덕소리 만세 시위이다. 심종협은 이 중 3월 30일의 진건면 양지리 만세 시위에 참여한 인물이다.
[활동 사항]
심종협은 1919년 3월 30일 밤 현재의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 양지리에 해당하는 경기도 양주군 진건면 양지리에 있는 이복여(李福汝)의 음식점 앞 도로에서 심종완(沈鍾忨)·이기선(李基善)·한태석(韓泰錫) 등 10여 명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심종협은 시위 이후 체포되어 1919년 5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는데, 1919년 3월 1일 손병희 등 민족 대표들이 발표한 독립선언의 소식을 전해 듣고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할 결심을 하였으며, 법정에서도 기소된 동지들과 함께 정의 인도에 따른 정당한 행동이었다는 점을 주장하였다. 경성지방법원은 심종협에게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선고하였고, 이에 심종협은 곧바로 항소하였으나 1919년 6월 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심종협은 이에 불복하여 다시 상고하였으나 1919년 7월 10일 고등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어 결국 옥고를 치렀다.
심종협은 1942년 6월 20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심종협에게 2005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