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900687 |
---|---|
한자 | 金德五 |
영어공식명칭 | Kim Deoko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조원기 |
출생 시기/일시 | 1882년 - 김덕오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15일 - 김덕오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 3·1운동 주도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3월 5일 - 김덕오 만기 출소 |
활동 시기/일시 | 1961년 4월 25일 - 김덕오 징역 8월 선고 |
몰년 시기/일시 | 1961년 8월 31일 - 김덕오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김덕오 대통령표창 추서 |
출생지 | 송촌리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
거주|이주지 | 송촌리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
활동지 | 송촌리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
활동지 | 덕소리 -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 |
활동지 | 조안리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조안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경기도 남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김덕오(金德五)[1882~1961]는 1882년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에 해당하는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 송촌리에서 태어났으며, 양주군 와부면 일대에서 3·1운동에 참여하였을 당시 농민이었다.
[활동 사항]
1919년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 지역에서의 만세 시위는 3월 14일 양주군 와부면 송촌리[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의 이정성(李正成)·김춘경(金春經)·김현모(金顯模) 등이 모여 다음 날인 3월 15일 군중을 이끌고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와부면 일대를 순회하는 대규모 만세 운동을 벌일 것을 계획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정성·김춘경·김현모 등은 3월 15일 아침 와부면 송촌리와 인근 주민 약 100여 명을 모았다. 와부면 송촌리에 거주하고 있던 김덕오는 정일성(鄭一成)·이갑동(李甲同)·오성준(吳成俊)·김덕여(金德汝)·이정운(李正雲)·김윤경(金允京)·이건흥(李建興) 등과 함께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김덕오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와부면 송촌리에 모인 시위대를 이끌고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에 해당하는 와부면 덕소리를 향하여 행진하였다. 도중에 지금의 남양주시 조안면 조안리에 해당하는 양주군 와부면 조안리에서 전태현(全泰鉉)·박경식(朴景植) 등이 합류하면서 시위대의 규모는 500여 명으로 커졌다.
양주군 와부면 덕소리를 향하여 행진하던 시위대는 일제 군경들과 충돌하였고, 김덕오는 시위 주도 혐의로 체포되어 1919년 4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선고받았다. 김덕오는 이에 불복하여 공소하였으나 5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당하였고, 재차 상고하였으나 7월 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김덕오는 서대문감옥에서 복역하다 1920년 3월 5일 만기 출소하였다.
김덕오는 1961년 8월 31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김덕오에게 1995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