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9004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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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금남리 산56-9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민규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571년 - 이춘원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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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634년 7월 26일 - 이춘원 사망 |
조성 시기/일시 | 1634년 - 이춘원 묘와 신도비 조성 |
현 소재지 | 이춘원 묘와 신도비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금남리 산56-9 |
성격 | 묘|신도비 |
양식 | 이수방부[신도비]|원수방부[묘표] |
관련 인물 | 이춘원 |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금남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춘원의 묘와 신도비.
[개설]
이춘원 묘와 신도비(李春元 墓와 神道碑)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관료인 이춘원(李春元)[1571~1634]의 묘와 신도비이다.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금남리에 있다. 이춘원의 본관은 함평(咸平)이다. 남양의 홍지성(洪至誠)[1528~1597]과 영평에 은거한 박순(朴淳)[1523~1589]에게 학문을 배웠다. 1596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을 시작하여, 1597년 광양현감으로 남원을 포위한 왜군과 싸웠다. 1613년 인목왕후(仁穆王后) 폐모론(廢母論)이 일어나자 반대하여 파직되었고, 1617년 권신들이 인목대비의 존호를 폐하고 대비에 대한 모든 의식을 없애려고 하자 극력 반대하여 다시 파직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 뒤 관직에 임명하려 하였으나 사퇴하였다.
[위치]
이춘원 묘와 신도비는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금남리 산56-9번지에 있다. 이춘원의 묘는 동향으로 있고 신도비는 봉분에서 약 80m 아래에 있다.
[변천]
이춘원 묘소는 광주(廣州) 선영(先塋)[현 경기도 하남시]에 있었는데, 이춘원의 행장(行狀), 신도비문, 1896년 편찬된 『함평이씨세보』에도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춘원의 아들 이초기(李楚奇)의 묘소가 예로부터 현재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이춘원 묘소는 근현대에 현재의 자리로 이장하였다고 추정된다.
[형태]
이춘원 묘는 부인 해평 윤씨(海平 尹氏)와 합장되어 단분(單墳)이며 현대에 제작한 호석(護石)을 둘러 놓았다. 봉분 옆에 묘표(墓表)가 있으며, 봉분 앞에 상석(床石), 향로석(香爐石), 문인석(文人石), 망주석(望柱石) 및 현대에 건립한 장명등이 있다.
[금석문]
이춘원 신도비는 이수방부(螭首方趺) 형태로 1636년 건립되었으며, 김상헌(金尙憲)[1570~1652]이 비문을 짓고, 사위 윤순거(尹舜擧)[1596~1668]가 썼다. 묘표는 원수방부(圓首方趺) 형태로 1634년 건립한 것이다. 앞면 중앙에 ‘유명조선국 가선대부 충청도관찰사 겸 순찰사 이공춘원지묘(有明朝鮮國 嘉善大夫 忠淸道觀察使 兼 巡察使李 公春元之墓)’라고 새겨져 있다. 오른쪽에 ‘정부인 해평윤씨지묘(貞夫人 海平尹氏之墓)’라고 새겨져 있고, 왼쪽에 건립 연대인 ‘숭정칠년갑술구월 일(崇禎七年甲戌九月 日)’과 1653년 부인의 장례 시기인 ‘종장계사 시월 일(從葬癸巳 十月 日)’이 새겨져 있다.
[의의와 평가]
이춘원 신도비의 이수에 새긴 용은 앞면에 한 마리, 뒷면에 두 마리여서 일반적인 모습과는 다르며, 신도비에 필수적인 전액(篆額)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이춘원 묘 문인석은 얼굴의 양감이 풍부한 우수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