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9004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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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青海 李氏 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용정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홍민호 |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용정리에 있는 청해 이씨 집성촌.
[내용]
이지란(李之蘭)의 본래 이름은 쿠룬투란티무르[古論豆蘭帖木兒]로 본관은 청해(靑海)이다. 고려 말 이성계(李成桂)와 결의형제를 맺고 함께 활동하였고, 왜구와의 전투와 위화도회군 등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다. 조선 건국 후에도 1차·2차 왕자의 난 때 공신에 봉해지는 등 지속적으로 활동하였으나, 태조가 왕위에서 물러나자 함경도 청해에서 은거하면서 불교에 귀의하였다. 이지란은 아들들에게 ‘물욕과 정치욕을 멀리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이지란 사후 이지란의 2남 이화영(李和英)은 조사의(趙思義) 등 동북면(東北面) 군민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태종에 귀부하여 관직 생활을 하다가 1423년(세종 5)에 귀향하였다. 이화영의 아들 중 이효온(李孝溫)도 관습도감판관(慣習都監判官),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 등을 역임하다가 관직에서 물러나 은거하였다. 이효온이 자리 잡은 터전이 현재의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용정리 일대이다.
[변천]
이효온이 경기도 남양주시 지역에 자리 잡은 초기에는 집과 마을이 조성되지 않은 상태였고, 산골일 뿐이어서 화전민처럼 농경 생활을 하였다고 전한다. 이효온의 후손들은 농토가 제한되어 땔나무를 모으고 숯을 만들어 현재의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청량리 일대까지 나가 팔면서 생계를 유지하였는데, 6·25전쟁 직전까지도 이러한 생활이 유지되었다고 전한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1973년까지 18세손이 거주하고 있으며, 10월에 세 차례 16대조까지의 가묘제(家廟制)를 지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