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9004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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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仇谷驛 |
영어공식명칭 | Gugog-yeok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구암리 |
시대 |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왕무 |
폐지 시기/일시 | 1896년 - 구곡역 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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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할 지역 | 평구역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구암리 |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구암리에 있었던 조선 시대 평구도 소속의 역.
[개설]
구곡역(仇谷驛)은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구암리 지역 천마산 인근에 있었으며,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 관할의 육로 교통로를 담당한 평구도 소속의 기관이다.
지금의 남양주 지역에 시행되었던 역제는 고려 시대의 제도에 유래를 두고 있다. 고려 시대에 조성된 구곡역은 조선 세조 대에 역제를 41개 역도와 543개 속역 체제로 개편할 때 경기도 양주목의 육로를 담당하는 역으로 고정되었다. 개항 이후 지방 제도를 재편하던 갑오개혁기에 역제가 중지되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고려사(高麗史)』 참역 조에 의하면, 남경이 위치하던 평구도에 속한 30개의 속역 중 하나였다. 한양의 흥인문을 출발하여 망우리를 지나 강원도로 연결되던 육로를 관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관련 기록]
『세조실록(世祖實錄)』에 의하면, 1457년(세조 3)에 양주 관내의 육상 교통을 담당하는 역으로 지정되면서, 경기강원도 정역찰방(程驛察訪)이 관할하였다.
[내용]
구곡역은 양주의 평구역과 가평을 연결하는 역로의 중간에 위치하였다. 조선 시대 도성과 직결되던 역으로 천마산 인근의 북한강 북쪽 연변에 위치하면서 강원도와 연결되던 도로를 관리하였다. 오늘날에도 대성리로 연결되어 강원도로 진입하는 입구이기도 하다.
조선 시대 전 시기에 걸쳐 구곡역의 체제는 지속되었다. 조선 전기의 기록인 『세종실록(世宗實錄)』「지리지」에 의하면, 남양주에는 구곡역 이외에 쌍수역, 봉안역, 오빈역, 전곡역, 동백역, 감천역, 연동역 등의 9개 역이 소속되어 있었다.
[변천]
1896년(고종 33) 1월의 칙령 제9호인 「각 역의 찰방과 역속의 폐지에 관한 안건」에 따라 공식적으로 구곡역의 기능이 소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