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901397 |
---|---|
한자 | 洪錫謨 |
이칭/별칭 | 경부(敬敷),도애(陶厓),구화재(九華齋),근와(近窩),망서당(望西堂),사옹(蒒翁),옥탄거사(玉灘居士),일양헌(一兩軒),자각산인(紫閣山人),찬승자(餐勝子)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채홍병 |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관한 시문학 작품을 남긴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홍석모(洪錫謨)[1781~1857]는 본관이 풍산(豊山)이고, 자는 경부(敬敷), 호는 가장 잘 알려진 도애(陶厓) 외에도 구화재(九華齋)·근와(近窩)·망서당(望西堂)·사옹(蒒翁)·옥탄거사(玉灘居士)·일양헌(一兩軒)·자각산인(紫閣山人)·찬승자(餐勝子) 등이 있다.
할아버지는 북학파(北學派)의 주요 인물 중 하나로 잘 알려진 홍양호(洪良浩)이다. 아버지는 이조판서(吏曹判書) 홍희준(洪羲俊), 어머니는 용인 이씨(龍仁 李氏)이다. 부인 청주 한씨(淸州 韓氏)와의 사이에서 두 아들 홍건주(洪健周), 홍선주(洪善周)를 두었다.
홍석모는 팔도(八道)를 유람하고 중국에도 방문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하고 다수의 시문을 지었다.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대해서도 관련 작품을 남겼다.
[활동 사항]
1781년 태어난 홍석모는 할아버지 홍양호에게 경학(經學)과 서예 등을 수학하였으며, 1795년(정조 19) 정조(正祖)가 친어머니 혜경궁 홍씨(惠慶宮 洪氏)의 회갑을 축하하며 화성(華城)에서 베풀었던 내연(內宴)에도 홍양호와 함께 참석하였다. 1804년(순조 4) 종산(鐘山)에서 과거 시험을 준비하면서 ‘상심계(賞心契)’라는 시사(詩社)를 주도하고 『상심록(賞心錄)』이라는 기록을 남겼으며, 1804년 식년사마시(式年司馬試)에서 생원(生員) 2등 8위로 합격하였다.
이후 순조(純祖) 대에 동몽교관(童蒙敎官)·부사과(副司果)·장악원주부(掌樂院主簿)·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형조좌랑(刑曹佐郎)·종묘서령(宗廟署令)·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 익찬(翊贊)·광흥창령(廣興倉令) 등의 중앙 관직과 과천현감(果川縣監)·황간현감(黃澗縣監)·안산군수(安山郡守)·남원부사(南原府使) 등의 지방 관직을 역임하였다.
헌종(憲宗) 대에는 1839년(헌종 5) 조선 13대 왕 명종(明宗)과 왕비 인순왕후(仁順王后) 심씨(沈氏)의 능묘인 강릉(康陵)의 영(令)으로 임명된 것을 비롯하여 장악원첨정(掌樂院僉正) 등의 관직을 제수받았다.
말년에 ‘국사(菊社)’라는 시사를 주도하였고, 1855년(철종 6) 정조 대 화성에서 열린 내연에 참여하였으며 혼인한 지 60년이 되는 회혼(回婚)을 지난 사람이니 노인을 우대한다는 의미에서 조정으로부터 옷감과 음식물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학문과 저술]
홍석모의 저술로는 각종 연중행사와 풍속을 정리하고 설명한 세시풍속집으로 1849년(헌종 15)에 완성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가 있으며, 한양(漢陽)의 세시풍속을 칠언절구 126수의 한시(漢詩)로 표현한 『도하세시기속시(都河歲時紀俗詩)』를 비롯하여 홍석모가 저술한 시문들을 모은 『도애시집(陶厓詩集)』, 금강산을 유람한 경험을 기록한 『간관록(艮觀錄)』과 1826년(순조 26) 동지사행(冬至使行)의 정사(正使)로 임명된 홍희준의 자제군관(子弟軍官) 자격으로 중국에 방문한 경험을 한시 형태로 기술한 『유연고(游燕藁)』 등이 있다.
또한 조선 후기 서화가인 이건필(李建弼)이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마현(馬峴)의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쳐지는 두강(斗江), 곧 두물머리 일대를 배를 타고 유람하며 그린 풍경도 「두강승유도(斗江勝遊圖)」가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실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두강승유도」에 홍석모가 종형제인 옥호(玉壺) 홍선모(洪宣謨)와 광산(匡山) 박종유(朴鍾儒)·죽초(竹樵) 오태운(吳泰雲) 등의 문인과 함께 두물머리 일대를 유람하면서 지은 「송정(松亭)」·「문앵(聞鶯)」·「두강승회(斗江勝會)」·「팔당(八塘)」 등의 시가 실려 있다. ‘송정’은 두물머리에 있던 박문수(朴文秀)의 별서(別墅)에 딸린 정자의 이름으로, 원래는 정약용(丁若鏞)의 집안에서 세운 임청정(臨淸亭)이었다. 홍석모는 유람 과정에서 ‘초상유제(苕上留題)’라는 시제 아래 두물머리 근방을 가리키는 두릉(杜陵) 지역[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살았던 인물이자 홍석모가 종유(從遊)하였던 서유구(徐有榘)와 정약용을 회고하는 시를 짓기도 하였다. 또한 이보다 앞선 1806년(순조 6) 한 차례 두릉 일대를 유람하고 거처하고 싶다는 의사를 담은 작품을 남기기도 하였다. 『도애시집』에 수록된 「두릉잡영(斗陵雜詠)」에서 해당 구절을 확인할 수 있다.
[묘소]
홍석모는 1857년(철종 8) 사망하였으며, 묘는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쌍용동 봉서산(鳳棲山)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