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9013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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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耆永 |
영어공식명칭 | Sin Giyeong |
이칭/별칭 | 치영(穉英),산북(汕北)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강원 |
출생 시기/일시 | 1805년 - 신기영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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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36년 - 신기영 이의춘과 함께 『양의미』 간행 |
몰년 시기/일시 | 1884년 - 신기영 사망 |
출생지 | 두릉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일대 |
거주|이주지 | 두릉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일대 |
성격 | 학자 |
성별 | 남성 |
본관 | 평산(平山) |
대표 관직|경력 | 동지중추부사 |
[정의]
경기도 남양주 출신의 조선 후기 학자.
[가계]
신기영(申耆永)[1805~1884]의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자는 치영(穉英), 호는 산북(汕北)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선공감부정 신사현(申師顯)이고, 할아버지는 홍문관응교 신귀조(申龜朝)이다. 아버지는 신교선(申敎善)이고, 어머니는 전의 이씨(全義 李氏)이다. 부인은 전주 이씨(全州 李氏)이고, 형제로는 신보영(申普永)이 있다.
[활동 사항]
신기영은 1805년(순조 5) 광주(廣州) 두릉(斗陵)[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일대]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익혔다. 음직으로 감역관을 지냈고, 1884년(고종 21) 노직(老職)으로 동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다. 음관으로 관직 생활을 하기도 하였지만, 신기영은 평생을 정약용의 문인으로 두릉에서 은거하며 경학과 문필 활동뿐 아니라 의술과 경세론 등 다방면에서의 저술 및 강학 활동에 매진하였다.
[학문과 저술]
신기영의 저술로는 문집인 『율당잡고(聿堂雜稿)』가 있다. 1836년(헌종 2) 이의춘(李宜春)과 함께 치종법(治腫法)에 관련된 저서인 『양의미(瘍醫微)』를 간행하기도 하였다. 만년에 김윤식(金允植)과 박은식(朴殷植)을 가르치기도 하였는데, 이를 통하여 정약용의 학문이 애국계몽운동으로 계승·발전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