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1359
한자 金邁淳
영어공식명칭 Kim Maesun
이칭/별칭 덕수(德叟),대산(臺山),문청(文淸)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수석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변명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76년 5월 10일연표보기 - 김매순 출생
활동 시기/일시 1795년 - 김매순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800년 - 김매순 초계문신에 선발
활동 시기/일시 1801년 - 김매순 예문관검열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806년 - 김매순 관직 사임
활동 시기/일시 1825년 - 김매순 양천현령 부임
활동 시기/일시 1834년 - 김매순 강화부유수 역임
몰년 시기/일시 1840년연표보기 - 김매순 사망
거주|이주지 수석동 - 경기도 남양주시 수석동 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남성
본관 안동(安東)
대표 관직 강화부유수

[정의]

경기도 남양주에 은거하였던 조선 후기 문신.

[가계]

김매순(金邁淳)[1776~1840]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덕수(德叟), 호는 대산(臺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양겸(金養謙)이고, 할아버지는 김범행(金範行)이다. 아버지는 통덕랑 김이수(金履鏽)이고, 어머니는 안종주(安宗周)의 딸 죽산 안씨(竹山 安氏)이다. 부인은 좌참찬 조덕윤(趙德潤)의 딸 임천 조씨(林川趙氏)이며, 김정순(金鼎淳)의 아들 김선근(金善根)을 양자로 입적하였다.

[활동 사항]

김매순은 1776년(영조 52) 5월 10일에 태어났다. 1795년(정조 19) 정시 문과에 병과 4위로 급제하였고, 1800년(정조 24) 초계문신에 선발되었다. 1801년(순조 1) 예문관검열이 되었으며, 이후 병조좌랑·홍문관부교리·의정부검상·용강현령 등을 역임하였다. 1806년(순조 6) 김매순은 사촌 형 김달순(金達淳)이 연루된 옥사로 인하여 관직에서 물러났고, 지금의 남양주시 수석동 일대로 거처를 옮겨 은거하였다.

김매순은 은거하는 동안 여러 작품과 대표 저술을 완성하였으며, 1821년부터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과도 교류하였다. 정약용이 저술한 『매씨서평(梅氏書平)』과 『상례사전(喪禮四箋)』을 두고 정약용과 경학 논쟁을 벌였고, 특히 『매씨서평』의 완성에 도움을 주었다.

김매순은 1825년(순조 25) 양천현령으로 관직에 복귀하였고, 이후 경주부윤을 지냈다. 1834년(순조 34) 강화부유수를 거쳐 동지경연사 등을 역임한 뒤 1840년(헌종 6)에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김매순의 저술로는 시문집인 『대산집(臺山集)』이 전한다. 1879년(고종 16)에 아들 김선근이 편집하고 문인 김상현(金尙鉉) 등이 수정하여 간행하였다. 김매순은 그 외에도 한양의 세시풍속과 연중행사를 기록한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와 『대산공이점록(臺山公移占錄)』, 『전여일록(篆餘日錄)』, 『궐여산필(闕餘散筆)』 등을 저술하였다.

[상훈과 추모]

김매순은 고종 대에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문청(文淸)이라는 시호를 하사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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