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광릉」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1338
한자 拜光陵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장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439년 - 「배광릉」 성현 출생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481년연표보기 - 「배광릉」 『허백당집』에 수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504년 - 「배광릉」 성현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842년 - 「배광릉」 성재항이 『허백당집』 중간
편찬|간행 시기/일시 1977년 - 「배광릉」 성균관대학교대동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이조명현집』 2권에 『허백당집』 영인
배경 지역 광릉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광릉수목원로 354[부평리 246-4]지도보기
성격 한시
작가 성현

[정의]

조선 전기 문인 성현이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광릉에 들러 지은 한시.

[개설]

「배광릉(拜光陵)」은 조선 전기 문인 성현(成俔)[1439~1504]이 지은 한시이다. 다양한 저서를 쓴 학자인 성현은 형 성임(成任)[1421~1484]을 따라 북경(北京)에 가는 길에 지은 기행시를 엮어 『관광록(觀光錄)』을 지었다. 또한 음률에 정통하여 유자광(柳子光)[1439~1512] 등과 『악학궤범(樂學軌範)』[1493]을 편찬하고, 1504년에는 『용재총화(慵齋叢話)』를 편찬하였다. 성현이 죽고 나서 갑자사화((甲子士禍)[1504]가 일어나서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하였으나, 뒷날에 신원되었다. 성현의 주요 저서로는 『허백당집(虛白堂集)』, 『용재총화』, 『악학궤범』 등이 있다.

「배광릉」은 『허백당집』에 수록된 한시이다. 초간본은 전하지 않고, 1842년(헌종 8) 나주에서 성재항(成載恒)이 중간한 것이 전한다. 1977년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이조명현집(李朝名賢集)』2권에 『허백당집』을 같이 영인하였다.

[구성]

「배광릉」의 형식은 칠언율시(七言律詩)이고, 운자(韻字)는 첨(瞻), 점(霑), 염(髥), 엄(嚴), 섬(纖)이다.

[내용]

「배광릉(拜光陵)」[광릉에 참배하다]

교산창취입쌍첨(喬山蒼翠入雙瞻)[교산의 푸른빛이 멀리 바라보이더니]

행도원릉체사점(行到園陵涕泗霑)[원릉에 도달하자 눈물 앞을 가리누나]

이필증위향안리(珥筆曾爲香案吏)[일찍이 향안리로 봉직하였던 몸이건만]

반룡막급정호염(攀龍莫及鼎湖髥)[정호의 수염 잡고 올라가지 못하였네]

연강수목정기란(連岡樹木旌旗亂)[산등성이 수목들은 깃발처럼 나부끼고]

쇄초린양상설엄(鎖草麟羊象設嚴)[풀 속에는 상석이 엄숙하게 서 있구나]

십사년광재일별(十四年光纔一瞥)[14년의 긴 세월이 눈 깜짝할 순간인데]

만공비우락섬섬(滿空飛雨落纖纖)[하늘 가득 부슬부슬 비가 흩뿌리는구나]

[특징]

「배광릉」은 성현이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에 있는 광릉을 참배하고 지은 한시이다. 광릉은 조선 제7대 왕 세조(世祖)[1417~1468]의 능이다. 세조는 성현이 처음으로 모신 임금이다.

수련(首聯)에서는 먼 거리에서부터 왕릉을 바라보며 가슴이 북받치는 것을 묘사하고, 원릉에 당도하자 억눌렀던 감정을 눈물로 표현하고 있다. ‘교산(喬山)’은 ‘교산(橋山)’과 같은 말이며, 옛날에 황제를 장사지냈던 산 이름에서 유래된 왕릉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함련(頷聯)에서는 일찍이 세조를 모시고 있었음을 떠올리는 구절이다. ‘향안리(香案吏)’는 왕의 시종신(侍從臣)을 나타내는 말인데, 성현이 매우 가까이서 세조를 모시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성현은 ‘정호의 수염’을 잡고 올라가지 못하였다는 표현으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정호’는 황제가 용을 타고 승천한 장소이며, 승천할 때 미처 따라가지 못한 신하가 용의 수염을 잡았다가, 수염이 빠지며 추락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즉, 성현은 세조를 따라 죽지 못하였다는 충심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경련(頸聯)에서는 왕릉 근처의 모습을 둘러본 뒤 배경을 묘사하고 있다. 미련(尾聯)에서는 시간이 쉬이 지나간 것에 대한 회한을 표현하고 있으며, 부슬비가 내리는 것을 통하여 안타까움을 강조하고 있다. 경련에서 14년이라는 표현이 등장하여, 세조가 1468년에 승하하였으므로 시를 지은 시기를 1481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배광릉」은 성현이 첫 급제 이후 처음으로 모셨던 세조에 대한 회한이 담겨 있는 한시이다. 세조의 무덤을 바라보며 세월의 흐름을 한탄하면서도 왕에 대한 기억을 되새기는 성현의 인간적인 면모를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참고문헌]
  • 『허백당집』 (한국고전번역원, 2012)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s://encykore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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