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9013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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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水石洞 說話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수석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장순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81년 6월 30일 - 「수석동 설화」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1-4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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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21년 11월 30일 - 「수석동 설화」 박이정에서 발행한 『경기북부구전자료집』에 수록 |
관련 지명 | 수석동 - 경기도 남양주시 수석동 |
성격 | 민담|전설 |
모티프 유형 | 지명 유래|신이담|풍수지리담 |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 수석동의 지명이나 지형지물 등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수석동 설화」는 경기도 남양주시 수석동의 지명이나 지형지물 등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정리한 것이다. 수석동은 경기도 양주군 미금읍에 속하였다가, 1980년 4월 1일 양주군에 속하였던 남양주가 남양주군으로 분리되면서 남양주군에 편입된 지역이다. 이후 미금읍이 미금시로 승격되어 분리되었다가 다시 남양주시와 통합되면서 수석동은 남양주시의 법정동이 되었다. 미금읍 기준으로는 인물담이 주로 채록이 되었고, 수석동이 된 이후로는 지명 유래에 대한 이야기가 남아 있다.
[채록/수집 상황]
1981년 6월 30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1-4에 ‘미금읍’의 채록 자료가 남아 있다. 과거 수석동은 양주군 미금읍의 일부였고, 『한국구비문학대계』1-4에 남양주의 이야기로 ‘미금읍’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으나, 수석동과 미금읍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것이 수석동의 이야기인지 판별하기는 어렵다.
미금읍의 일부로 수석동의 설화가 채록되었다는 전제하에 자료를 소개하면 주로 박문수(朴文秀)[1691~1756], 김선달(金先達), 김삿갓[김병연(金炳淵), 1807~1863], 서화담(徐花潭)[서경덕(徐敬德), 1489~1546]과 같이 실존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수록되었다.
2001년 11월 30일에 박이정에서 발행한 『경기북부 구전자료집』에도 수석동과 관련한 채록 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당시 조희웅, 박인희, 조재현이 조사에 참가하였고, 지역 주민 김씨가 제보하였는데, 김씨는 본인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꺼렸고, 제보 도중 녹음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구연을 중단하였다. 이 밖에는 서사가 있는 이야기보다 지명과 관련하여 간단한 이야기만 부분적으로 자료로 남아 있다.
[내용]
『한국구비문학대계』1-4에 수록된 「수석동 설화」를 살펴보면 제보자가 야담과 관련된 이야기를 자주 접한 것으로 보이며, 『동야휘집(東野彙輯)』[1869]이나 『청구야담(靑邱野談)』과 같은 곳에서도 살필 수 있는 이야기가 채록이 되었다. 특히 서화담이 일본에서 정찰 나온 일본 승려를 도술 싸움으로 물러 가게 한 이야기와 호환을 당할 뻔한 신랑을 구한 이야기가 채록되었다. 그 외에 아이의 지혜로 사건을 해결한 박문수와 김삿갓의 방랑에 대한 이야기와 같이 문헌설화에서도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이야기가 채록되어 수록되었다. 「도끼정승 원두표」의 경우는 정승이 나는 자리에 묘를 쓴 원두표(元斗杓)[1593~1664]가 무식하였다는 것과, ‘비빔밥 벽’이라는 글자를 만들었다는 이야기이다.
『경기북부 구전자료집』에는 수석동과 관련하여 「미금면」, 「진터, 진터밑」이라는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지명 유래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미금면」은 수석동의 이름 유래를 설명한 이야기로 서술되어 있지 않고, 제보자도 행정상의 변천 과정만 구술하고 있다. 「진터, 진터밑」은 제보자가 구연을 중단하여 서사가 완전하지 않다. 다만 이괄(李适)[1587~1624]과 관련되어 묘의 혈을 끊어 피가 흘렀다는 이야기를 구술하던 중이었던 것을 통하여 풍수지리에 관련된 이야기로 추측된다.
[모티프 분석]
화담 서경덕에 관련된 이야기는 신이담과 이인의 모티프가 혼합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서화담 이야기(1)」은 임진왜란(壬辰倭亂)[1592]에 대한 모티프와 이인에 대한 모티프가 등장하여,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일본이 철저하게 준비를 하였으며 많은 첩자가 돌아다녔음을 이야기한다. 굳이 서화담이 아니어도 다른 설화에서 위인 혹은 주변인이 이를 예지하여 물리치는 이야기로 많이 산재되어 있다. 「서화담 이야기(2)」는 호환에 대한 모티프가 드러난 이야기인데, 이인이 미래를 예견하여 호환을 막고 둔갑을 하는 호랑이를 몰아냈다는 것을 통하여 서경덕의 뛰어남을 이야기하고 있다. 「미금면」, 「진터, 진터밑」은 지명 유래에 대한 이야기인데, 「진터, 진터밑」은 구연을 하다 중간에 중단하여 이야기가 완전하지 않지만, 이괄과 관련한 풍수지리 모티프가 들어간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미금면」의 이야기는 단순히 행정상 지명의 변천 과정을 구연한 이야기여서 지명 유래에 대한 단일 모티프로 해석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