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9010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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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昌新學校 |
영어공식명칭 | Changsin School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학교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양진아 |
인가 시기/일시 | 1909년 - 창신학교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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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설립지 | 창신학교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
성격 | 사립 학교 |
[정의]
개항기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지역에 있었던 사립 교육 기관.
[변천]
1900년대 초 애국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교육을 통하여 민중을 각성시키고 인재를 양성하여 국권을 회복하고자 사립 학교의 설립이 급증하였다. 한국인이 설립하는 사립 학교가 크게 늘어나자 이를 규제하기 위하여 일제는 1908년 8월 26일 「사립학교령(私立學校令)」을 공포하였으나 사립 학교의 설립은 계속되었다.
남양주시에서도 지역 유지들의 주도로 사립 학교의 설립이 이어진 가운데 1909년 남양주시 진접읍[옛 경기도 양주군 진벌면]에 창신학교(昌新學校)가 지역 유지들에 의하여 설립되었다. 지역 유지 중 특히 유흥무(柳興茂), 이만선(李晩善), 이원영(李源永)이 창신학교의 설립에 적극적이었다. 그중 이원영은 가세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창신학교의 설립 비용으로 수백 환(圜)을 부담하였다.
또 창신학교의 설립 기금으로 한성부 전동[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송동]에 거주하던 김성연(金聖演)이 10환을 기부하였고 한성부 재동[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재동]에 거주하던 이재정(李在正)이 2환을 기부하였다. 그 밖에도 지역 내 여러 인사들이 기부를 하며 창신학교의 설립을 재정적으로 지원하였다.
[교육 활동]
지역 유지들과 여러 인사들이 창신학교의 설립 비용을 보조하면서 창신학교의 상황은 날이 갈수록 진전되어 1909년 7월에는 학생 수가 70여 명에 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