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충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0783
한자 鄭忠煥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헌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8년 4월 19일연표보기 - 정충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8년 5월 12일 - 정충환 경기도 양주군 묵은면에서 군수 물자 징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08년 5월 18일 - 정충환 일본군애 체포
활동 시기/일시 1909년 2월 4일 - 정충환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징역 5년 선고
몰년 시기/일시 1962년 1월 17일연표보기 - 정충환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86년연표보기 - 정충환 건국포장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정충환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출생지 정충환 출생지 - 경기도 동두천시 송내동
활동지 남양주 - 경기도 남양주시
성격 의병
성별 남성

[정의]

개항기 남양주 일대에서 활동하였던 의병.

[개설]

1905년 11월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늑약이 일본에 의해 강제 체결되었다. 고종은 1907년 6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국제 평화 회의에 3명의 특사를 파견하였는데, 일제는 이를 빌미 삼아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그 뒤를 이어 즉위한 순종을 압박해 대한제국군의 해산을 강요하여 대한제국의 주권을 사실상 박탈하였다. 이에 서울의 시위대(侍衛隊) 대대장 박승환이 군대 해산 조칙이 내려진 날 자결했다는 소식을 접한 해산 군인들이 일본군과 시가전을 전개하면서 서울의 시위대 및 지방의 진위대(鎭衛隊) 군인들이 대일 항전을 개시하였다. 이후에도 일부 해산 군인들이 의병으로 전환하여 일본군을 상대로 항전을 지속하면서 전국적인 의병 투쟁이 벌어지게 된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대한제국군 출신으로 군대 해산 이후 실직하고 고향에 내려가 있던 황재호(黃在浩)도 의병을 일으켜 경기도 포천군과 경기도 양주군 등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가계]

정충환(鄭忠煥)[1888~1962]은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경신(敬信), 호는 송은(松隱)이다. 아버지는 성균관교관 정인식(鄭寅植)이다. 1888년 4월 19일 경기도 양주목 이담면 송내리[현재 경기도 동두천시 송내동]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정충환은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일대를 포함하는 경기도 양주군과 경기도 포천군 등 경기도 동북부 지역에서 활동한 황재호 의병 부대에 합류하면서 의병 활동에 투신하였다.

정충환은 1908년 5월 12일 황재호 의병 부대 동료들 80여 명과 함께 경기도 양주군 묵은면(墨隱面)[현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에 진입하여 의복 등의 군수 물자를 징발하는 활동을 하였다. 1908년 5월 18일에는 경기도 포천군 산내면 덕둔리(德屯里)[현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덕둔리]에서 해당 지역 주민에게 군자금을 요청했지만,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서 실패하고 체포되었다. 결국 1909년 2월 4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

정충환은 1962년 1월 17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정충환의 공로를 인정하여 1986년 건국포장,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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