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0672
한자 洪在卨
영어공식명칭 Hong Jae-seol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양진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3년 11월 21일연표보기 - 홍재설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7년 6월 - 홍재설 동우회 인사과장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07년 7월 - 홍재설 고종 양위 반대 운동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07년 7월 - 홍재설 내란죄 판결로 10년 유배형 언도
몰년 시기/일시 1939년 10월 25일연표보기 - 홍재설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19년 8월 15일연표보기 - 홍재설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홍재설 출생지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홍재설 거주지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활동지 홍재설 활동지 - 서울특별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경기도 남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홍재설(洪在卨)[1873~1939]은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인 양주군 건천면 독정 출신이며, 홍재설의 아들 홍종욱(洪鍾煜), 홍종엽(洪鍾熀)은 1919년 3월 경기도 용인군 포곡면[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활동 사항]

1873년 11월 21일 양주군 건천면 독정에서 태어났다. 1907년 6월 조선의 독립을 공고히 할 것을 목적으로 창립된 단체인 동우회(同友會)의 인사과장(人事課長)으로 활동하며 1907년 7월 고종 양위 반대 운동에 참여하였다.

1907년 7월 당시 고종은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인해 일본으로부터 양위를 강요받은 상태였다. 여기에 일본 외무대신 하야시 다다스[林董]가 조선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조선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조선을 방문하자 세간에는 고종이 양위할 것이며 헤이그 밀사 사건을 사죄하기 위해 일본 도쿄를 방문한다는 소문, 그리고 일본이 조선에 불리한 조약을 체결하려고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조선 국민들이 대대적으로 반발하는 상황에서 동우회는 회장 윤이병(尹履炳)의 지휘 아래 집회·연설을 통한 반대 시위를 전개하였다. 동우회는 석고단(石鼓壇)에서 고종의 일본 방문을 저지할 것을 결의하고, 모든 원인이 조선 정부의 대신들에게 있다고 하면서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李完用)의 집에 찾아가 불을 질렀다. 홍재설은 윤이병과 뜻을 같이하여 함께 행동했으며, 윤이병 등 19명과 함께 경무관에게 체포되었다. 홍재설은 1907년 12월에 평리원(平理院) 재판에서 내란죄 판결과 10년 유배형을 받았고, 전라남도 지도군[현 전라남도 신안군 지도읍] 지도(智島)에 유배되었다. 유배에서 돌아온 홍재설은 경기도 용인군 포곡면에 거주하다가 1939년 10월 25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2019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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