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9005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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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末生 |
영어공식명칭 | Jo Malsaeng |
이칭/별칭 | 평중(平仲),근초(謹初),사곡(社谷),화산(華山),문강(文剛)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수석동 산2-2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신채용 |
출생 시기/일시 | 1370년 - 조말생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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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401년 - 조말생 문과 장원, 요물고부사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407년 - 조말생 문과 중시 아원 급제, 전농부정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411년 - 조말생 판선공감사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418년 - 조말생 이조참판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426년 - 조말생 외직으로 좌천 |
활동 시기/일시 | 1434년 - 조말생 중추원사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435년 - 조말생 예문관 대제학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446년 - 조말생 영중추원사 임명 |
몰년 시기/일시 | 1447년 - 조말생 사망 |
묘소|단소 | 조말생 묘소와 신도비 - 경기도 남양주시 수석동 산2-2 |
성격 | 문신 |
성별 | 남성 |
본관 | 양주(楊州) |
대표 관직 | 이조참판|대제학 |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 수석동에 묘와 신도비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조말생(趙末生)[1370~1447]의 본관은 양주(楊州)이며, 자는 근초(謹初)·평중(平仲), 호는 사곡(社谷)·화산(華山), 시호(諡號)는 문강(文剛)이다. 아버지는 서운관정(書雲觀正) 조의(趙誼)이고, 어머니는 신씨(申氏)이다. 조말생의 첫째 부인은 김왕보(金王輔)의 딸 함창 김씨(咸昌 金氏)이고, 둘째 부인은 신하(申夏)의 딸 평산 신씨(平山 申氏)이다.
첫째 아들 조선(趙璿)은 태종(太宗)과 신빈 신씨(信嬪 辛氏) 소생의 정정옹주(貞靜翁主)와 혼인하여 부마 한원군(漢原君)이 되었다. 둘째 아들 조찬(趙瓚)은 태종과 원경왕후(元敬王后)의 부마 평양군(平壤君) 조대림(趙大臨)의 사위가 되었고, 셋째 아들 조근(趙瑾)은 영의정 이직(李稷)의 손녀인 성주 이씨(星州李氏)와 혼인하였다.
[활동 사항]
조말생은 1370년(공민왕 19)에 태어났다. 1401년(태종 1)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요물고부사(料物庫副使)에 제수되었고, 이후 감찰(監察)·정언(正言)·헌납(獻納)을 거쳐 이조정랑(吏曹正郞)이 되었다. 1407년(태종 7) 문과 중시(重試)에 아원(亞元)으로 급제하고 전농부정(典農副正)에 제수되었다. 이후 사헌장령(司憲掌令)과 직예문관(直藝文館)을 거쳐 1411년(태종 11)에는 판선공감사(判繕工監事)에 제수되었다가 곧 승정원 동부대언(承政院同副代言)[승정원 동부승지]에 올랐다.
1418년(태종 18)에는 이조참판에 임명되었는데 태종이 당시 품계를 뛰어서 정덕대부(靖德大夫)로 가자(加資)하니 사양하였다고 한다. 이후 병조판서가 되면서 더욱 태종의 신임을 받았다. 1426년(세종 8) 장죄(贓罪)에 연좌(連坐)되어 외직(外職)으로 좌천되었다가, 1434년(세종 16) 9월에 중추원사(中樞院使), 1435년(세종 17)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에 임명되었다. 1446년(세종 28)에 영중추원사(領中樞院事)에 임명되었는데, 이듬해인 1447년 사망하였다.
[묘소]
조말생의 묘는 본래 남양주시 금곡동에 해당하는 경기도 양주군 미금면 금곡리에 있었으나, 고종의 능인 홍릉(洪陵)이 조성되면서 지금의 남양주시 수석동 산2-2로 이장되었다. 조말생의 묘는 정경부인 평산 신씨와 합장묘로 조성되어 있다. 조말생의 신도비는 묘역 아래의 좌측에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