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0505
한자 渾蓋通憲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747번길 16[능내리 27-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신진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787년연표보기 - 혼개통헌의 제작
문화재 지정 일시 2019년 6월 26일연표보기 - 혼개통헌의 보물 제2032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혼개통헌의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보물 지정 번호 삭제
현 소장처 실학박물관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747번길 16[능내리 27-1]지도보기
성격 천문 시계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실학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천문 시계.

[개설]

혼개통헌의(渾蓋通憲儀)는 기계 시계의 발명 이전에 서구에서 사용되던 평면구형 아스트롤라베(astrolabe)의 중국판이라 할 수 있는 서양식 천문의기이다. 명나라 사람 이지조(李之藻)[1564~1630]가 1607년 편찬한 『혼개통헌도설(渾蓋通憲圖說)』에 설명된 원리에 따라 만들어졌다. 이지조는 아스트롤라베가 중국의 전통적인 우주론인 혼천설(渾天說)과 개천설(蓋天說)을 통합하여 구현한 것이라는 뜻에서 ‘혼개통헌(渾蓋通憲)’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Matteo Ricci)[1552~1610]의 스승 크리스토퍼 클라비우스가 아스트롤라베의 원리에 대하여 저술한 『아스트롤라비움(Astrolabium)』을 저본으로 삼아 혼개통헌의의 제작법과 사용법을 소개하였다.

이규경(李圭景)[1788~?]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따르면 혼개통헌의의 실물이 조선에 유입된 것은 영조(英祖) 재위기인 18세기 무렵이었다. 다만 원리를 담은 서적인 『혼개통헌도설』 자체는 이미 17세기 중반부터 조선 지식인 사회에 유행하여 서양의 천문학 관련 지식의 수용에 도움을 주었으며, 정조(正祖) 재위기에는 이에 입각한 신형 해시계인 간평일구(簡平日晷)와 혼개일구(渾蓋日晷)의 제작에도 도움을 주었다.

경기도 남양주시 실학박물관에 소장된 혼개통헌의는 조선 후기 실학자 유금(柳琴)[1741~1788]이 1787년(정조 11) 제작한 것으로, 2019년 6월 26일 보물 제2032호로 지정되었다. 이후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형태]

혼개통헌의는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활용되어 오던 구형의 혼천의와는 달리, 남극에서 바라본 남회귀선 이북의 하늘을 적도면에 평면으로 투영한 의기였다.

경기도 남양주시 실학박물관에 소장된 혼개통헌의의 세부 구조를 살펴보면 아스트롤라베의 마테르(mater)에 해당하는 모체판 앞면의 중심에는 천구의 북극을 상징하는 구멍이 있는데, 아스트롤라베의 레테(rete)에 대응하는 성좌판을 끼워 회전시키기 위한 핀을 꽂기 위한 것이다. 모체판은 외곽을 24등분하여 맨 위에 시계 방향으로 시각을 새겼고, 바깥쪽부터 남회귀선·적도·북회귀선의 동심원과 위쪽에 지평좌표원을 새겼다. 한편 성좌판은 하늘의 북극과 황도상의 춘분점 및 동지점을 이어주는 T자형으로, 축과 황도를 나타내는 황도원(黃道圓)이 한 판으로 제작되어 있으며 특정 별과의 대조 작업을 위하여 돌출되게 만들어 놓은 지성침(指星針) 11개가 있다.

[특징]

실학박물관 소장 혼개통헌의는 모체판 앞뒷면에 ‘건륭 정미년에 약암 윤선생을 위하여 만들다[乾隆丁未 爲約菴尹先生製]’라는 명문과 ‘유씨금(柳氏琴)’이라는 인장이 남아 있는 것을 통하여 조선 후기 실학자 유금이 1787년(정조 11) 제작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유금은 『혼개통헌도설』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제작 과정에서 나름의 재해석을 가미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유물의 모체판과 성좌판에 새겨진 별자리가 기본적으로는 중국의 『혼개통헌도설』에 근거한 것이었지만 조선의 실정에 맞는 별 또한 함께 그려져 있다는 점은 재해석이 가미되었음을 잘 보여 주는 사례이다.

[의의와 평가]

혼개통헌의는 18세기 조선의 지식인들이 중국을 거쳐 전래된 서구의 천문학·기하학을 이해하려는 노력뿐만 아니라, 해당 지식을 어떻게 소화하여 천문학·수학 등의 분야에서 발전을 이뤄냈는지 보여 주는 귀중한 유물이다. 제작 원리와 정밀도는 물론 당시 조선의 금속 세공술에서 나타나는 소박한 조형미와 절제미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과학기술사는 물론 공예기술사적 측면에서도 높은 가치가 있다. 여기에 조선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는 현재 유일하다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인정받아 2019년 6월 보물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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