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9004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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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楓巖取愚大師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릉로156번길 295[송능리 307]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조욱진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695년 - 취우대사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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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766년 - 취우대사 사망 |
건립 시기/일시 | 1767년 - 풍암취우대사비 건립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79년 9월 - 풍암취우대사비 발견 |
현 소재지 | 풍암취우대사비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릉로156번길 295[송능리 307] 봉인사 |
원소재지 | 풍암취우대사비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릉로156번길 295[송능리 307] 봉인사 |
성격 | 비석 |
양식 | 팔작지붕[지붕돌] |
관련 인물 | 취우대사|한길로|이유간|윤행순|조윤형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173㎝[총 높이]|117㎝[비신] |
관리자 | 봉인사 |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봉인사에 있는 취우대사의 생애와 부도 건립 내용을 새긴 조선 후기 비석.
[개설]
풍암취우대사비(楓巖取愚大師碑)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봉인사에 있다. 취우대사(取愚大師)[1695~1766]가 열반에 든 이후인 1767년(영조 43) 세워졌다. 비문은 이유간(李惟簡)이 글을 짓고 윤행순(尹行醇)이 글씨를 썼으며, 당대 명필인 조윤형(曺允亨)[1725~1799]이 전액하였다.
[건립 경위]
풍암 취우대사가 1766년 열반에 들어 다비(茶毘)하자 사리 2과가 나왔다. 부도를 세워 사리를 봉안하고 부도 옆에 취우대사와 부도 건립에 대한 내용을 새긴 취우대사비를 건립하였다.
[위치]
풍암취우대사비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307 봉인사 경내 종무소 앞에 있다.
[형태]
풍암취우대사비는 비의 몸체를 세우는 바닥 돌과 비의 몸체 및 팔작지붕의 형태를 띤 지붕돌로 구성되어 있다. 총 높이는 173㎝이고, 비신은 117㎝이다. 비의 몸체에는 파도 무늬가 있어 이채롭다.
[금석문]
풍암취우대사비에는 ‘풍암대사부도비명(楓巖大師浮屠碑銘)’이라는 제액이 새겨져 있다. 앞면에는 취우대사 사리탑비의 내용이 적혀 있고, 뒷면에는 시주자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사리탑비의 내용을 통하여 취우대사가 금강산과 철원 보개산에 오랫동안 주석하였고 만년에 봉인사에 와서 머물다가 입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교학을 연찬한 후 좌선과 염불을 행하였는데, 선과 교, 염불을 함께 포괄한 조선 후기 삼문(三門) 수행 체계를 그대로 실천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현황]
풍암취우대사비는 경기도 남양주시 봉인사 경내에 있어 관리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 20세기 초 봉인사가 화재로 소실되었을 때 풍암취우대사비 역시 땅속에 묻혔다가 1979년 9월 봉인사 주지 한길로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의의와 평가]
풍암 취우대사는 18세기에 선, 교, 염불의 삼문의 실천을 중시하였으며, 임제태고법통(臨濟太古法統)과 스승 회암정혜(晦庵定慧)의 교학적 정통성을 계승하려고 하였다. 풍암취우대사비를 통하여 취우대사의 만년 행적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