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9004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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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國賜峰堡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광전리 산92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윤성호 |
건립 시기/일시 | 삼국 시대 - 국사봉보루 축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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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9년 - 국사봉보루 토지주택박물관에서 광역 지표 조사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3년 - 국사봉보루 육군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
소재지 | 국사봉보루 -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광전리 산92 |
성격 | 보루 |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광전리 국사봉에 있는 삼국 시대의 관방 시설.
[개설]
국사봉보루(國賜峰堡壘)는 수락산에서 연결되는 독립된 봉우리인 국사봉[해발 330.5m]의 정상부에 있다. 한강을 남북으로 연결하고 불암산성과 퇴뫼산성을 동서로 연결하는 교통로를 통제하기 위한 요충지에 축조되었다. 한강 유역의 북쪽으로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는 아차산, 용마산-망우산-수락산을 기준으로 서쪽의 중랑천 수계와 동쪽의 왕숙천 수계가 활용되었다. 왕숙천 수계에서 중랑천 수계에 해당하는 지점으로 연결되는 교통로는 퇴계원을 통하여 연결이 가능한데, 국사봉보루는 수락산 동쪽에서 교통로를 통제하는 관방 시설로 운영되었다.
[위치]
국사봉보루는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광전리의 국사봉 정상부에 있다. 국사봉보루는 퇴계원을 통하여 수락산을 동서로 연결하는 교통로에 인접하며, 의정부 남동쪽 깃대봉과 수락산을 연결하는 숫돌고개를 지나면 국사봉에서 동서로 교통로가 나뉘는 지점에 해당한다. 국사봉보루 북쪽으로 7㎞ 지점에 부용산보루, 동쪽으로 3㎞ 지점에 퇴뫼산성, 서쪽으로 4㎞ 지점에는 불암산성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국사봉보루는 전근대 문헌에서는 확인되지 않으며 일제 강점기 토지 조사와 고적 조사에서도 누락되었다. 1999년 토지주택박물관의 광역 지표 조사 과정에서 처음 확인되었다. 2003년 육군박물관의 남양주시 군사 유적 조사 과정에서 다시 지표 조사가 이루어졌다. 국사봉보루에 대한 정밀 발굴 조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현황]
국사봉보루는 장타원형의 산봉형 석축산성이다. 토지주택박물관의 지표 조사에서 전체 둘레는 103m이고, 장축은 길이가 40m, 단축의 길이는 17m로 보고되었다. 육군박물관의 지표 조사에서는 둘레가 130m로 보고되었다. 두 보고서의 규모의 차이는 성벽의 측량 기준점에 따른 오차로 추정된다.
보루의 동벽은 노출된 자연 암반을 활용하고 있으나 나머지 구간에는 석축으로 되어 있다. 보루의 서쪽과 남동쪽에서 석축의 면석이 확인된다. 서쪽에 길이 약 5m, 높이 50㎝의 성벽이 확인되는데 성벽은 가공하지 않은 세장한 깬돌로 허튼층쌓기가 되어 있다. 남동쪽 잔존 구간은 가장 보존 상태가 양호한 구간으로 잔존 구간에서 길이 약 4.2m, 높이 60㎝의 성벽 4단이 확인된다. 한쪽 면을 다듬거나 가공하지 않은 화강암으로 바른층쌓기를 하였으며, 상부를 안쪽으로 물리는 퇴물림형식으로 축조되었다.
국사봉보루의 정상부는 군사 시설이 조성되면서 평탄하게 삭토된 상태로 기반암이 노출된 상태이다. 부분적으로 남아 있는 퇴적층에서는 짧은목항아리, 평저호와 같은 타날문토기편이 수습되는데 대체로 신라 토기로 추정된다. 또한 정상부에서 토제마편이 수습되었다. 토제마가 제작된 시기는 삼국 시대일 가능성도 있고 토제마가 조선 시대의 민간신앙과 관련된다는 견해도 있다. 교통의 요충지에서 제사의 흔적인 토제마와 철제마가 자주 수습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사봉보루의 성격을 유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의의와 평가]
국사봉보루는 출토 유물을 통하여 신라가 북진하는 데 활용하거나 나당전쟁기에 이웃한 퇴뫼산성을 보조하는 보루로 활용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정밀 발굴 조사가 진행되지 않아 신라 이전 초축 주체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확인하기 어렵다. 서울 아차산성, 하남 이성산성, 화성 당성과 같이 한산주의 주요 치소이면서 교통의 요충지에서 확인되는 토제마가 출토된다는 점은 교통로의 통제와 감시를 주목적으로 하는 국사봉보루의 성격을 잘 대변하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