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9004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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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금남리 181-1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이종록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72년 - 금남리 고인돌 고려대학교 발굴조사단에서 발굴 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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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금남리 고인돌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금남리 181-1 샛터마을 |
성격 | 고인돌 |
양식 | 기반식 |
크기(높이,지름) | 240㎝[1호 받침돌 길이]|165㎝[1호 받침돌 너비]|30㎝[1호 받침돌 두께]|190㎝[2호 덮개돌 길이]|150㎝[2호 덮개돌 너비]|45㎝[2호 덮개돌 두께]|240㎝[3호 덮개돌 길이]|220㎝[3호 덮개돌 너비]|35㎝[3호 덮개돌 두께]|250㎝[4호 덮개돌 길이]|193㎝[4호 덮개돌 너비]|30㎝[4호 덮개돌 두께]|210㎝[5호 덮개돌 길이]|115㎝[5호 덮개돌 너비]|30㎝[5호 덮개돌 두께]|150㎝[6호 덮개돌 길이]|120㎝[6호 덮개돌 너비]|50㎝[6호 덮개돌 두께] |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금남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돌무덤.
[개설]
금남리(琴南里)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초기 철기 시대 관련 유물도 출토되어 정확한 조성 시기를 확정하기 어렵다. 1972년 발굴 조사에서 총 5기가 확인되었으며, 이후 정확한 경과는 알 수 없으나 1기의 고인돌이 추가로 복원되었다.
[위치]
금남리 고인돌은 조사 당시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금남리 170번지에 1기, 금남리 186번지에 4기가 있었다. 5호 고인돌의 덮개돌은 원래 위치에서 옮겨져 있었는데, 지역 주민들에 의하여 원래 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 고인돌이 있는 지점은 금남리 181-1 샛터마을로 대성리 방면으로 향하는 국도 제45호선 오른쪽의 북한강 강변에 있다. 주변에는 20여 기가 넘는 고인돌이 군을 이루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금남리 고인돌은 1972년 팔당댐 건설로 인하여 수몰될 지역에 대한 문화재연구소 주관 유적 조사를 실시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수몰될 선사 유적을 학술적으로 조사한다는 문화재관리국 방침에 따라 8월 고려대학교 발굴조사단에서 조사를 하였다. 발굴 조사 과정에서 5개의 고인돌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형태]
금남리 고인돌의 형태는 다음과 같다.
1호 고인돌은 덮개돌만이 확인되었는데, 현재 받침돌은 이후에 주변의 석재를 이용하여 임의로 받쳐 놓은 것이다. 2호와 짝을 이루는 형태이며 상면 둘레에는 채석의 흔적이 보인다. 1호 받침돌은 길이 240㎝, 너비 165㎝, 두께 30㎝이다.
2호 고인돌은 1호에서 북동쪽으로 약 5m 지점에 있다. 1호와 마찬가지로 큰 덮개돌 아래에 2개의 받침돌을 받쳐 놓았다. 2호 덮개돌은 길이 190㎝, 너비 120㎝, 두께 45㎝이다.
3호 고인돌은 2호에서 북쪽으로 10m 지점에 있으며 덮개돌에 채석한 흔적이 보인다. 하단에는 5개의 석재가 놓여 있는데, 받침돌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3호 덮개돌은 길이 240㎝, 너비 220㎝, 두께 35㎝이다.
4호 고인돌은 3호에서 북동쪽으로 3m 지점에 있으며, 덮개돌 상면에 채석한 흔적이 있다. 4호 덮개돌은 길이 250㎝, 너비 193㎝, 두께 30㎝이다.
5호 고인돌은 3호와 4호에서 동쪽으로 약 30m 떨어진 곳에 있다. 북동쪽 모서리가 상당 부분 파손되었으며, 하부에는 6개의 석재로 받쳐 놓았다. 5호 덮개돌은 길이 210㎝, 너비 115㎝, 두께 30㎝이다.
6호 고인돌은 5호에서 동쪽으로 약 2m 떨어져 있다. 덮개돌은 정사각형 형태이며, 북동쪽 모서리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 하부에는 2개의 받침돌이 있다. 6호 덮개돌은 길이 150㎝, 너비 120㎝, 두께 50㎝이다.
[출토 유물]
금남리 고인돌에서 출토된 유물은 주로 민무늬토기[무문토기(無文土器)]이며, 초기 철기 시대에 해당하는 경질토기편(硬質土器片)도 일부 출토되었다. 4호 고인돌에서는 그물에 매다는 그물추가 출토되었다. 또한 고인돌 주변에서는 간돌도끼[마제석부(磨製石斧)], 반달돌칼, 돌화살촉을 수습하였다.
[현황]
금남리 고인돌은 주변에 경작지와 수풀로 둘러싸여 있어 정확한 현황 파악이 어렵다. 본래 고인돌로 추정되는 덮개돌이 여러 개 있었으나 민간 시설물이 들어서면서 파괴 또는 옮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금남리 고인돌은 남양주 일대 북한강 유역에 청동기 시대에서부터 초기 철기 시대까지 사람들이 거주하였던 사실을 증명하는 유적이다. 또한 출토된 유물인 그물추를 보아 북한강 연안 주민들이 어업에 의존하는 비중이 컸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