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9004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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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海兵隊 北漢江地區 戰鬪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일패동 산73-8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금보운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50년 10월 1일 - 해병대 북한강지구 전투 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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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 시기/일시 | 1950년 10월 2일 - 해병대 북한강지구 전투 북한군 200명 사살 및 50명의 포로 포획 후 서울 외곽 방어선 확보 |
종결 시기/일시 | 1950년 10월 7일 - 해병대 북한강지구 전투 종료 |
발생|시작 장소 | 북한강지구 - 경기도 남양주시 일패동 산73-8 국도 제6호선변 |
종결 장소 | 북한강지구 - 경기도 남양주시 일패동 산73-8 국도 제6호선변 |
성격 | 사건 |
관련 인물/단체 | 한국 해병대|북한군 |
[정의]
1950년 10월 6·25전쟁 중 경기도 남양주시 일패동에서 전개된 한국 해병대와 북한군 간의 전투.
[역사적 배경]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침입으로 6·25전쟁이 시작되었다. 휴전선 인근에서 전투가 전개되고 있던 과정에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공격을 받았고, 전쟁 발발 이후 약 3개월여 동안 부산을 중심으로 한 경상남도 일부 지역을 제외한 모든 지역을 점령당하였다. 이후 인천상륙작전을 계기로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수도권 방어 및 북진을 준비하게 되었다. 현 경기도 남양주시 일패동에 해당하는 양주군 미금읍 일패리 북한강 지구에서 발발한 한국 해병대와 북한군 간의 교전은 서울 수복 이후 방어선 구축이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전개되었다.
[경과]
1950년 10월 1일 현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과 경기도 구리시의 경계에 있는 망우리고개에서 경춘가도를 따라 북한강 방향으로 공격을 실시하며 전투가 시작되었다. 1950년 10월 2일 양주군 미금읍 일패리[현 경기도 남양주시 일패동] 일대에서 재침공을 준비 중인 북한군 1개 연대와 치열한 격전을 전개하여 북한군 200명을 사살하고, 50명을 포로로 포획하였다. 이를 통해 한국군은 서울 외곽 방어선을 확보하였다.
[결과]
해병대 북한강지구 전투는 1950년 10월 7일 마무리되면서 서울을 향한 북한군의 재침공을 막았다.
[의의와 평가]
해병대 북한강지구 전투는 6·25전쟁에서 경기도 남양주시 일대의 지리적 의미가 중요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 해병대가 양주군 미금읍 일패리에서 한국군의 진격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서울을 향한 북한군의 재침공을 사전에 막았으며, 한국군과 유엔군이 북진을 개시하여 38선을 돌파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게 되었다. 해병대 북한강지구 전투를 기리기 위해 지금의 남양주시 일패동 산73-8에 1953년 ‘해병대 북한강지구 전첩비’가 건립되기도 했다. 해병대 북한강지구 전첩비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동 전 해병대 사령부 내의 해병대 기념관으로 옮겨졌고, 1987년에 같은 자리에 전첩비가 재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