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둔토조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0419
한자 驛屯土調査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명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전개 시기/일시 1895년 9월 - 역둔토조사 사판 위원 장제영 임명·파견
전개 시기/일시 1895년 9월연표보기 - 역둔토조사 시작
전개 시기/일시 1895년 12월 - 역둔토조사 녹장역토 답험 시작
전개 시기/일시 1896년 6월 - 역둔토조사 각 역의 사판 마무리
전개 시기/일시 1896년 8월 - 역둔토조사 사판 위원 명의로 둔토 문부 작성
전개 시기/일시 1896년 9월 - 역둔토조사 분쟁지 사판 종료
전개 시기/일시 1899년 - 역둔토조사 사검 위원 강봉헌 임명
전개 시기/일시 1899년 6월 1일 - 역둔토조사 실지 조사
전개 시기/일시 1899년 11월연표보기 - 역둔토조사 역둔양안, 정도성책 작성
관련 인물/단체 장제영(張濟英)|임원호(任原鎬)|강봉헌(姜鳳憲)

[정의]

개항기 재정 개혁의 일환으로 경기도 남양주 지역을 포함하여 전국에서 시행된 대규모의 국유지 조사.

[개설]

역둔토조사(驛屯土調査)는 각 지역에 분산된 국유지를 정확히 파악하여 중앙집권적 재정 제도의 토대를 마련하고 세입을 확충하기 위하여 두 차례에 걸쳐 실시되었다. 먼저 1895년 을미사판(乙未査辦) 당시 경기도 남양주 지역이 속한 옛 경기도 양주군에서는 연말부터 실지 조사가 시작되어, 1896년 6월경 역토(驛土)의 답험(踏驗)이 대부분 마무리되었다. 다음으로 광무사검(光武査檢) 때에는 1899년 6월부터 실지 조사가 시작되어 1899년 11월경 둔목토(屯牧土) 조사와 문부(文簿) 작성이 완료되었다.

[역사적 배경]

갑오개혁 시기 개화파 정권은 국가 재정을 일원화하고, 탁지부가 총괄하는 중앙 집권적인 재정 제도를 실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역을 대신하여 근대적인 체신 제도를 도입하였다. 이어서 황실 중심의 근대 개혁이 추진되는 대한제국 시기 광무 정권은 둔토(屯土), 목장토(牧場土), 기타 공유지를 전부 내장원에 귀속시켜 황실 재정의 중요한 재원으로 삼았다. 따라서 국가 혹은 황실 재정의 주요 수입원으로 자리매김한 동시에 존재 가치를 상실한 역둔토의 소유 관계, 실제 면적, 도조(賭租) 등을 면밀히 조사하여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성이 생겼다.

[경과]

경기도 남양주 지역이 속한 옛 경기도 양주군에서는 1895년 9월 사판(査辦) 위원으로 장제영(張濟英)이 임명·파견되어 당시 군수 임원호(任原鎬)와 함께 조사를 진행하였다. 1895년 12월 녹장역토(綠場驛土)의 답험을 시작으로 다음 해인 1896년 6월 초순 각 역의 사판이 대략 마무리되었고 정리를 마친 문부가 농상공부로 상납되었다. 이어서 1896년 8월에는 사판 위원 명의로 둔토의 문부가 작성되었고, 1896년 9월 중순에 이르러 사음(舍音)과 작인(作人) 선정 문제로 분쟁이 지속된 곳의 사판이 종료되었다.

한편 1899년에는 사검(査檢) 위원으로 강봉헌(姜鳳憲)이 임명되어 1899년 6월 1일부터 실지 조사가 개시되었고, 1899년 11월경 전답의 면적을 기재한 역둔양안(驛屯量案)과 도조를 기록한 정도성책(定賭成冊)이 작성되었다.

[결과]

을미사판 당시 옛 경기도 양주군에 소재한 6개 역토의 도전(賭錢)은 1만 277냥(兩) 9전(錢) 9푼(分)이었고, 둔토는 충훈부둔토(忠勳府屯土)가 51필지였다. 세부적으로는 논이 15필지 2석(石) 3두(斗) 5승락(升落)이었고, 밭이 36필지 16일(日) 7식(息) 반반경(半半耕)이었으며, 가대(家垈)가 2좌(座)였다.

광무사검을 통하여 파악된 둔토를 살펴보면 양향둔(糧餉屯)의 면적은 논이 167.5두락(斗落), 밭이 46.5일경(日耕)이었고, 도조는 1,544.25두, 도전은 62.61냥이었다. 충훈부둔토의 면적은 논이 69두락, 밭이 22.1일경이었고 도조는 775.5두, 도전은 17냥이었다. 경리둔(經理屯)의 면적은 논이 338.5두락, 밭이 68일경이었고 도조는 3,321.5두였다. 총융둔(摠戎屯)의 면적은 논이 157.9두락, 밭이 207.4일경이었고, 도조는 1,147.8두, 도전은 320냥이었다. 관둔(官屯)의 면적은 논이 16.7두락, 밭이 8.7일경이었고 도조는 120두, 도전은 7.85냥이었다. 의정부둔(議政府屯)의 면적은 논이 2,000두, 밭이 53.2일경이었고 용호둔(龍虎屯)은 가대가 8냥이었다.

[의의와 평가]

경기도 남양주 지역이 속한 옛 경기도 양주군에서 실시된 역둔토조사는 국가가 자체 소유지를 면밀히 파악하여 국유지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고, 재정 수입을 확충하기 위한 기초 작업이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나타난 배타적 소유권의 일방적인 관철은 작인의 경작권 상실은 물론, 사실상 민유지와 다름이 없었던 무토(無土)가 강제적으로 국유지에 편입되는 폐단을 낳았다. 역둔토조사는 지주의 소유권 중심으로 토지 제도가 재편되는 출발점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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