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9004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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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平丘驛 |
영어공식명칭 | Pyeonggu-yeok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삼패동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왕무 |
폐지 시기/일시 | 1896년 - 평구역 폐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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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할 지역 | 평구역 - 경기도 남양주시 삼패동 |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 삼패동에 있었던 조선 시대 평구도 소속의 역.
[개설]
평구역(平丘驛)은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삼패동에 있었던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의 육로 교통로를 담당한 기관이다. 조선 시대 경기도의 역제는 고려 시대의 제도에 유래를 두었다. 고려 시대에 조성된 평구역은 세조 대에 역제를 41개 역도, 543개 속역 체제로 개편할 때 경기도 양주목에 위치하는 평구도의 역으로 고정되었다. 개항 이후 지방 제도를 재편하던 갑오개혁기에 역제가 중지되었고 1896년에 찰방 제도가 폐지되면서 소멸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고려사(高麗史)』 참역 조에 의하면, 남경이 위치하던 평구도에 속한 30개의 속역 중 하나였다. 한양의 흥인문을 출발하여 망우리를 지나 강원도와 충청도로 연결되던 육로를 관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관련 기록]
성현의 『허백당기』에 평구역 중수기가 있다. 평구역기는 1502년(연산군 8)에 관사의 중수 시말을 적은 기문이다.
[내용]
조선 시대 전 시기에 걸쳐 평구역의 체제는 지속되었다. 조선 전기의 기록인 『세종실록(世宗實錄)』「지리지」에 의하면, 평구도에는 평구역과 같이 구곡역, 쌍수역, 봉안역, 오빈역, 전곡역, 동백역, 감천역, 연동역 등의 9개 역이 소속되었다. 조선 후기의 기록인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평구역에는 역리 24명, 역노 44명, 역비 9명과 역마 9필이 배속되어 있었다. 평구역은 평구도의 본역으로 찰방이 상주했다. 속역은 구곡역, 쌍수역, 봉안역, 오빈역, 전곡역, 백동역, 감천역, 연동역, 녹양역, 안기역, 양문역 등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양주목에 의하면, 양주목 동쪽 70리 지점에 평구역이 있었다고 한다.
1414년(태종 14) 역승(驛丞)을 두었다. 1457년(세조 3) 역승을 혁파하고 정역찰방(程驛察訪)을 두었다. 1502년(연산군 8) 관사를 중수하였다.
[변천]
1896년(고종 33) 1월의 칙령 제9호인 「각 역의 찰방과 역속의 폐지에 관한 안건」에 따라 공식적으로 평구도의 기능이 소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