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900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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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楊州- 傳統- - 退溪院山臺- |
영어공식명칭 | Toegyewonsandaenori that Tradition is Alive in Namyangju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퇴계원읍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이효녕 |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 퇴계원읍 일대에서 전승되어 온 탈놀이.
[개설]
퇴계원산대놀이는 경기도 남양주시 퇴계원읍 일대에서 전승되어 오는 전통적인 탈놀이이다. 탈놀이는 빈터나 너른 마당에서 탈을 쓰고 춤과 노래, 연극을 보이는 총체적인 연희 예술이다. 흔히 탈놀이를 ‘탈춤’이라 일컫기도 하는데, 탈춤은 사실 봉산탈춤, 강령탈춤, 은율탈춤 등 황해도 지역의 탈놀이만를 일컫는 말이다. 탈놀이는 지역에 따라 황해도 지역의 탈춤을 비롯하여 경상남도 지역의 오광대, 부산 지역의 야유, 서울·경기 지역의 산대놀이[또는 별산대놀이] 등으로 나뉘는데, 퇴계원산대놀이는 양주별산대놀이, 송파산대놀이 등과 함께 서울·경기 지역에 분포하는 산대놀이의 하나이며, 산대놀이 특유의 날카로운 풍자와 성적 농담, 웃음 등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퇴계원산대놀이는 역사적·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0년 8월 2일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52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2022년 현재 퇴계원산대놀이보존회[회장 민경조]를 중심으로 전승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퇴계원산대놀이의 구성 요소]
퇴계원산대놀이는 춤사위에 음악 반주가 따르고 노래와 춤을 추면서 대사·동작으로 연기하는 총 12과장의 놀이마당으로 이루어져 있고, 30여 명의 연희자들이 출연한다. 전체 12개 과장에는 산대놀이 탈놀이에서 공통적으로 출연하는 파계승, 몰락한 양반, 승려를 유혹하는 소무, 하인, 영감, 할미, 첩, 사당 등이 등장하며 허위에 대한 폭로,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풍자, 성적인 농담, 웃음과 탄식 등을 보여 주며, 연희 시간은 대개의 민속 예능이 그러하듯 관중의 호응과 연희자의 역량에 따라 시간 제한 없이 길어지기도 하는데, 보통은 전 과장을 연희하는 데에 5시간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놀이의 진행 과정을 보면 본격적인 놀이에 앞서 길놀이와 고사를 지낸다. 그러고 나서 가장 먼저 모든 방향의 신에게 놀이마당의 부정과 잡귀를 물리치고 연희자와 관중의 무사함을 기원하는 제1과장 상좌춤으로 시작하여, 제2과장 옴중과 상좌놀이, 제3과장 먹중놀이, 제4과장 연잎과 눈끔적이놀이, 제5과장 침놀이, 제6과장 애사당놀이, 제7과장 팔먹중과 노장놀이, 제8과장 신장수놀이, 제9과장 취발이놀이, 제10과장 말뚝이놀이, 제11과장 포도부장놀이, 제12과장 신할아비와 미얄할미놀이 순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구성은 양주별산대놀이와 유사한데, 조선 시대에 퇴계원이 양주에 속하였고 양주별산대놀이가 퇴계원산대놀이의 형성과 전승에 직간접적으로 크게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양주별산대놀이의 연희자들을 초청하여 함께 연희하기도 하였고, 때로는 거꾸로 초청을 받아 양주별산대놀이에 함께 참여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탈놀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춤은 등장인물의 성격을 드러내거나 인물 간의 갈등과 대립을 형상화하기도 하며, 독립적인 이야기들을 이어 주거나 다른 내용·과장으로 넘어갈 때 자연스럽게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한다. 퇴계원산대놀이에서는 기본 춤사위를 ‘백이기’라고 부르는데, 이는 탈놀이 연희자들이 춤을 출 때 “백이자.”, “박자.”라고 말한 데서 비롯되었다. 기본 춤사위에는 불림, 경사위, 고개잡이, 너울잡이, 제자리깨끼, 엇새기깨끼, 곧은치기깨끼, 멍석말이, 어깨치기, 여닫이, 목잡이, 양발치기깨끼리, 곱사위, 팔뚝잡이, 막사위 등이 있으며, 실제 과장에 들어가면 등장인물에 따른 40여 종의 거드름춤과 깨끼춤으로 세분화된다.
반주 악기로는 피리가 둘에 대금·해금·장고·북이 각각 하나씩 편성되는 삼현육각(三絃六角)이다. 삼현육각은 승무, 살풀이, 탈놀이 등 민속춤의 반주 음악으로 자주 쓰인다. 상황에 따라서는 삼현육각 외에도 꽹과리, 태평소가 추가되거나 피리, 장구만으로 반주되기도 한다. 연주되는 악곡은 매우 느리고 장중한 느낌을 주는 「염불타령」을 비롯하여 「중허튼타령」, 「자진허튼타령」, 「느린굿거리」, 「자진굿거리」, 「능계」 등이 있다. 연희 중에 부르는 노래로는 「청춘가」, 「창부타령」, 「백구타령」, 「둥둥타령」, 만신의 덕담과 「노랫가락」 등이 나오며 경기민요에 바탕을 둔 선소리 계통의 소리가 주를 이룬다.
탈놀이에 사용되는 가면은 나무를 깎고 그 위에 색을 칠한 나무탈인데, 상좌 2종, 옴중, 연잎, 눈끔적이, 완보, 원먹중, 먹중 4종, 왜장녀, 애사당, 노장, 큰소무, 작은소무, 말뚝이, 원숭이, 취발이, 샌님, 포도부장, 신할아비, 미얄할미 등 총 23개의 가면이 사용된다. 옴중·먹중·연잎·눈끔적이·취발이·샌님 등 주요 등장인물은 코가 크고 입이 타원형으로 길게 벌어졌으며 전반적으로 선이 둥글다. 이 밖의 탈은 사실성이 강조되었으며 대체로 고운 선을 갖고 있다. 탈의 입술 사이 폭이 좁아 연희가 대사보다는 몸짓이나 춤이 위주로 진행됨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도 퇴계원산대놀이의 탈은 나무탈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제작되고 있다.
[퇴계원산대놀이의 전승과 오늘]
퇴계원산대놀이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1920년대 수집된 것으로 추정되는 퇴계원산대놀이의 탈들이 서울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이 중의 먹중탈 뒷면에 “양주군 퇴계원리 산대도감 사용 경복궁조영당시(楊州郡退溪院里 山臺都監 使用 景福宮造營當時)"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경복궁 중건을 위해 영건도감(營建都監)을 설치한 때가 1865년 4월이므로, 새겨진 글귀대로 경복궁 중건 당시에 사용하던 탈로 간주한다면, 1865년 무렵에 먹중탈이 제작되었으며 그 이전에 퇴계원산대놀이가 연희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조선 시대 양주에 속하였던 퇴계원은 강원도와 함경도의 행인들이 한양의 동대문으로 들어가는 직통로였다. 교통의 요지였던 퇴계원에는 한양에 공급되는 연초, 숯, 장작, 건축자재, 소, 곡식, 채소 등 소비재가 집하되었으며, ‘퇴계원’이라는 명칭으로 알 수 있듯 원(院)[숙박시설]이 있던 곳으로 100여 호의 객줏집과 역원(驛院)이 왕숙천을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상업의 발달로 항상 많은 사람이 왕래하는 교통의 요지였던 퇴계원은 한양에 공급되는 온갖 소비재가 모여든다고 할 만큼 상업이 발달하여 규모가 큰 공연인 산대놀이가 연희될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갖춰져 있었다. 그래서 퇴계원산대놀이는 정월대보름뿐 아니라 사월초파일, 단오, 백중, 추석 때와 봄철 농한기 등 다양한 시기에 놀았고, 때로는 씨름대회와 남사당놀이판 등도 함께 열릴 만큼 놀이판이 컸다고 한다.
20세기 초반 퇴계원산대놀이의 대표적인 연희자는 한원근[1870~1933]이다. 가면 제작과 취발이·옴중·관 쓴 중 역을 맡았는데, 기량이 가장 뛰어났다고 한다. 한원근은 양주별산대놀이에서 산대놀이를 배워 왔는데, 나중에는 양주별산대놀이에서 다시 한원근에게서 배워 갈 정도였다고 한다. 민홍운[1876~1939]은 눈끔적이·신할아비·말뚝이, 조홍기[1881~1941]는 먹중, 한용삼[1873~1955]은 포도부장·말뚝이, 임명운[1870~1943]은 노장, 서순집[1868~1933]은 먹중·옴중, 한만세[1888-?]는 애사당, 윤원산은 왜장녀와 소무, 서만봉은 왜장녀·옴중, 최은동[1890~1965]은 소무 역을 맡았다. 이들 연희자는 주로 연초 가공업에 종사했으며, 상인과 부호들의 지원을 받아 탈을 만들고 놀이판을 열어 산대놀이를 연희했다.
활발하게 연희되던 퇴계원산대놀이는 1921년 조선총독부가 연초 전매령을 실시하면서 퇴계원 지역의 경제가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경제적 변화는 퇴계원산대놀이의 전승에 큰 타격을 입히게 되었다. 1945년 추석에 퇴계원산대놀이가 잠시 재개되었는데 이때는 이미 연로한 연희자들 대부분이 세상을 뜬 뒤인지라 연희자들을 충당하기 위하여 양주별산대놀이의 연희자들을 초청하여 함께 연행했다. 결국 6·25전쟁을 거치며 놀이의 전승은 맥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러던 중 1990년 2월 퇴계원산대놀이보존회가 결성되어 놀이의 복원에 힘쓰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 중반 놀이 복원을 위한 조사가 진행되어, 과거의 연희를 기억하고 있는 백황봉과 최사윤을 통해 퇴계원산대놀이의 역대 연희자, 가면, 놀이 내용 등이 학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 무렵 연희 대본으로 「퇴계원산대놀이보존회본」을 채록하고, 서울대학교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퇴계원산대놀이 목각탈 21점과 바가지탈 방식 나무탈 2점을 토대로 탈과 의상을 복원하였다. 1997년 5월 제1회 퇴계원산대놀이 탈 및 의상복원 재연 공연을 한 이후 현재는 12과장을 모두 복원하기에 이르렀다.
2010년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퇴계원산대놀이는 현재 퇴계원산대놀이보존회를 중심으로 정기 공연·초청공연 등 지속적인 공연 활동과 함께 회원 강습 등 전승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